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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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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는 대한민국 프로농구 KBL에 소속된 프로 농구단이다. 1994년 동양제과 농구단으로 시작하여, 대구 동양 오리온스, 대구 오리온스를 거쳐 2011년 고양시로 연고지를 이전하며 고양 오리온스로 변경되었다. 2022년 데이원자산운용에 인수되어 고양 캐롯 점퍼스로, 2023년 재정난으로 고양 데이원 점퍼스로 변경되었다가, 2023년 소노인터넷에 인수되어 현재의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라는 팀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1-02, 2015-16 시즌에 KBL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했으며, 2001-02, 2002-03 시즌에는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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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 - [스포츠팀]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 로고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 로고
팀명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
연고지경기도 고양시
창단1996년
소속 리그KBL
모기업㈜소노인터내셔널
웹사이트공식 웹사이트
역사
팀 역사동양제과 농구단 1996년
대구 동양 오리온스 1997년~2003년
대구 오리온스 2003년~2011년
고양 오리온스 2011년~2015년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2015년~2022년
고양 캐롯 점퍼스 2022년~2023년
고양 데이원 점퍼스 2023년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 2023년~현재
경기장
홈 경기장고양 소노 아레나
수용 인원6,216명
구단 정보
구단주서준혁
단장이기완
감독김태술
주장정희재
성적
리그 우승2 KBL 리그

2. 역사

1994년, 한국프로농구연맹에 창단서를 제출하면서 시작되었다. 모기업 동양제과의 대지분으로 1995년 3월 '동양제과 농구단'을 창단하고 1995년 10월에는 농구단의 심볼을 오리온스로 확정지었으며, 1996년 3월 27일 창단식을 갖고 남자 농구계에 출사표를 던졌다. 동양농구단은 27일 후 코리안리그 우승, 6개월 후에는 제77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10] 1997년 프로농구 출범을 앞두고 1996년 11월 농구열기가 강한 대구광역시를 연고지로 정하였고, 12월 27일 10개 구단 중 가장 먼저 독립법인 동양레포츠 주식회사를 설립, '동양제과 농구단'에서 '대구 동양 오리온스 프로농구단'으로 개칭, 프로농구단으로 정식 출범하였다.

2000-01 시즌에는 주력 선수 대부분이 병역 문제로 이탈하고, 전력 보강 없이 백업급 선수들로만 시즌을 치르면서 KBL 역사상 최악의 기록인 '''32연패'''와 '''3승 42패'''를 기록하며 최하위에 머물렀다.

2003년 9월, 동양그룹과 오리온그룹의 분리로 '대구 오리온스 농구단'으로 개칭하였다. 2011년 대구광역시에서 고양시로 연고지를 이전하며 '고양 오리온스 농구단'으로 변경되었으나, 이 과정에서 많은 잡음과 부정적인 시각이 있었다.[10]

2011년 6월, 추일승 감독 체제의 오리온스는 대구광역시와 협의 없이 경기도 고양시로 연고지 이전을 전격적으로 추진했다.[10] 이로 인해 2011-12 시즌부터 팀명은 대구 오리온스에서 고양 오리온스로 변경되었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연고지 이전은 오리온 제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질 만큼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10]

2015년 '고양 오리온스'는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로 모기업 명을 포함한 팀명으로 변경했다. 홈구장은 2010-11 시즌까지 대구실내체육관이었고, 연고지 이전 후 2011-12 시즌부터 고양체육관을 사용하고 있다.

2022년 초, 오리온이 구단 지분 매각을 추진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2022년 4월, 오리온은 대우조선해양 자회사인 데이원자산운용과의 매각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공식 발표했다.[1] 2022년 5월, 구단과 선수, 직원 모두 데이원자산운용으로 이전되면서 인수가 공식적으로 확정되었다.[2] 안양 KGC인삼공사에서 두 차례 우승을 차지한 김승기 감독이 감독으로 선임되었다.[3]

2022년 8월 25일, 데이원스포츠는 구단명을 고양 캐롯 점퍼스로 공식 발표했다.[5] 2023년 3월, 재정난으로 인해 캐롯손해보험과의 스폰서 계약이 해지되면서 고양 데이원 점퍼스로 구단명을 변경했다.[6]

2. 1. 창단 및 초기 (1996-2001)

1994년, 한국프로농구연맹에 창단서를 제출하면서 시작된다. 모기업 동양제과의 대지분으로 1995년 3월 '동양제과 농구단'을 창단하고 1995년 10월에는 농구단의 심볼을 오리온스로 확정지었으며, 1996년 3월 27일 창단식을 갖고 남자 농구계에 출사표를 던졌다. 동양농구단은 27일 후 코리안리그 우승이라는 신화를 기록했고, 6개월 후에는 제77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준우승이라는 쾌거를 올렸다.[10]

대한민국 프로농구가 출범하기 1년 전, 실업 농구팀인 동양제과 농구단으로 창단되었다. 이듬해 동 리그 창설 멤버로 참가했다. 참가 초창기에는 "'''대구 동양 오리온스'''"라는 이름으로, 닉네임인 오리온스는 모기업 동양제과의 브랜드명인 오리온에서 유래했다.

동양제과1996년 3월에 고려대학교경희대학교를 연고 학교로 하여 창단했다. 창단 감독으로는 상무 농구단의 감독이었던 박광호를 선임했으며, 김진 코치를 영입했다. 또, 고려대학교 포워드 전희철[11], 김병철[12]과 김광운[13], 허남영[14] 등을 비롯한 15명의 선수들을 창단 멤버로 영입하며 기틀을 마련했다. 그 해 4월의 박카스배 코리안리그 1차 대회에서 상무와 6승 2패로 동률을 이루었으나 승자승 원칙에 따라 창단 27일 만에 첫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골밑에서 몸을 사리지 않았던 전희철은 MVP를 수상했고, 동양제과의 저력은 그 해 전국체전 준우승을 거쳐 프로 원년까지 이어져 우승 후보로 손꼽히기에 이르렀다. 덕분에 창단 초기부터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며 시즌을 시작할 수 있었다.

2000-01 시즌, 주력 선수 대부분이 병역으로 빠지고, 제대로 된 보강 없이, 주로 백업급 선수들만으로 시즌을 치렀다. 결과적으로, 현재도 KBL 기록으로 남아있는 '''32연패'''를 포함하여 '''3승 42패'''라는 참패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 해의 승리 수(3)와 승률(0.067)은 모두 KBL 최저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 해의 고전은 많은 팬들의 동정을 샀고, 현재도 오리온스 팬들은 한국에서 팀에 대한 충성도로 1, 2위를 다툴 정도이다.

2. 2. 32연패와 암흑기 (1998-2001)

1997-98 시즌 종료 후 전희철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했고, 팀에서는 김병철, 박재일[18]을 비롯한 주전급 국내 선수 6명을 모두 국군체육부대에 입대시켰다. 팀의 베스트 5는 외국인 선수 2명과 이적생 이인규, 이훈재, 정락영 등으로 모두 물갈이되었다. 외국인 선수 선발에서는 그레그 콜버트[19]라는 걸출한 선수를 뽑을 수 있었기에 구단 관계자들은 최하위권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8경기를 치를 때까지 득점 및 리바운드 순위에서 1·2위를 다투던 그레그 콜버트가 부인과의 불화를 이유로 돌연 귀국하면서 시즌이 꼬이기 시작했다. 콜버트 대신 자바리 마일스를 영입했지만, 그의 기량은 콜버트에 크게 못 미쳤고 이후 연패를 거듭했다. 선수단의 사기가 크게 떨어지면서 연패는 좀처럼 끊이지 않았다. KBL 신기록인 12연패와 NBA 기록인 25연패를 넘어선 32연패에 빠졌고, 이 연패는 1999년 2월 28일 나산 플라망스전에서 85:66으로 겨우 끝낼 수 있었다. 대구실내체육관은 마치 우승이라도 한 분위기였고 구장을 찾은 팬들과 팬클럽 회원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남은 경기에서도 전패를 당하며 3승 42패로 1998-1999 시즌을 마감했다.[20]

1999-2000 시즌에는 공익근무 소집 해제 후 복귀하는 전희철, 신인 드래프트에서 2순위로 입단한 조우현[21] 등 복귀하거나 새로 합류하는 선수들이 있어서 시즌 초반 기대감을 높였다. 코칭 스태프와 선수, 프런트도 이전 시즌의 굴욕을 벗어던지기 위해 혼연일체가 되었다. 하지만 시즌 전 기대했던 신인 포인트가드 김상우[22]가 팔목 부상을 입으면서 시즌 내내 포인트가드 부재로 고생하게 된다. 전희철은 시즌 초 이마 부상, 6강 다툼이 한창일 때 발목 부상으로 결장했고, 조우현도 허리 디스크로 시즌 중 15일간 결장했으며, 외국인 선수 무스타파 호프[23]는 부인의 출산을 이유로 3경기를 결장하는 등 악재가 겹치며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시즌 막판 6경기에서 5승 1패로 선전하며 치고 올라가는 듯했으나, 결국 6위권과 1승 차이(20승 25패)로 8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000-01 시즌에는 김병철이 복귀하고 전희철 등이 건재하여 4강 전력으로 평가받았으나, 9승 36패로 다시 꼴찌를 기록하면서 참담한 시즌을 보냈다. 우선 포인트가드의 부재가 컸다. 원래 슈팅 가드인 김병철이 팀 사정상 시즌 내내 포인트가드 역할을 하면서 제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 이흥배[24], 김상우 등 기대했던 신예 포인트가드 선수들의 성장이 뒷받침되지 못한 것이 뼈아팠다. 또한 기대 이하였던 외국인 선수가 자주 교체되면서 조직력을 정비할 시간이 없었다. 와이킹 존스-앨버트 리차드슨-토시로 저머니, 데이먼 플린트-마이클 루이스-토드 버나드 등으로 이어지는 선수 교체는 팀의 전력을 약화시켰다. 시즌 중 최명룡 감독이 해임되고 김진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임명되는 등 갖은 노력을 했으나, 결국 10위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2. 3. 김승현 영입과 전성기 (2001-2007)

2001-02 시즌 대구 동양 오리온스는 '꼴찌의 반란'이라는 호칭을 얻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3순위로 지명된 동국대학교 출신의 가드 김승현과 1순위 용병 마커스 힉스의 합류는 팀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김승현은 178cm의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드리블과 패스, 빠른 스피드로 경기당 12.2득점, 4.0리바운드, 8.0어시스트, 3.2스틸을 기록하며 어시스트와 스틸 부문 1위를 차지했고, 시즌 MVP와 신인상을 동시에 수상했다.[25] 힉스는 뛰어난 골밑 돌파와 블록슛, 리바운드 능력을 바탕으로 24.2득점(4위), 8.2리바운드, 3.7어시스트, 2.9블록(1위)을 기록하며 외국인 선수상을 수상했다.[25]

전희철과 김병철은 '양철' 듀오로 불리며 팀을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김진 감독은 김병철에게 수비를 강조했고, 전희철에게는 골밑 로테이션 수비의 중책을 맡겼다. 이들은 감독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며 팀의 상승세에 기여했다.[25] 20순위로 뽑힌 라이언 페리맨 또한 경기당 14.81개의 리바운드로 1위에 오르며 힉스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김진 감독의 용병술과 정태호 단장의 지원 속에 대구 동양 오리온스는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했고, 플레이오프에서도 4강 5차전, 결승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25] 김승현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병역 문제까지 해결했다. 2002년에는 대구 동양 오리온스와 삼성 라이온즈가 각각 농구와 야구에서 우승하며 대구광역시 스포츠 팬들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2002-03 시즌을 앞두고 샐러리캡 문제로 전희철이 전주 KCC 이지스로 이적하고, 페리맨도 창원 LG 세이커스로 팀을 옮기면서 전력 누수가 발생했다. 새로 영입한 외국인 선수 AJ 롤린스[26] 도 기대에 미치지 못해 시즌 중반 토시로 저머니[27]로 교체되었지만, 김승현과 힉스의 콤비 플레이는 더욱 강력해졌고, LG에서 영입한 박훈근[28] 이 전희철의 공백을 메웠다. 그러나 저머니의 부진, 김승현의 징계, 박훈근의 부상 등 악재가 겹치면서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신인 가드 박지현이 김승현의 공백을, 박재일이 박훈근의 공백을 훌륭히 메웠고, 김병철이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팀은 위기를 극복하고 2년 연속 정규리그 1위를 달성했다. 김병철은 시즌 MVP, 힉스는 외국인 선수상, 김진 감독은 감독상을 수상했다.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원주 TG삼보 엑서스와 맞붙어 명승부를 펼쳤지만, '15초 실종사건'이라는 오심 논란 속에 준우승에 머물렀다. 5차전에서 15초 동안 전광판 시계가 멈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고, 동양은 재경기를 요청했지만 KBL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동양은 6차전에서 패하며 우승을 놓쳤다.

2003-04 시즌을 앞두고 모기업 동양그룹이 동양그룹과 오리온그룹으로 분리되면서 팀명이 '대구 오리온스'로 변경되었다. 오리온스는 32승 22패, 정규리그 3위로 시즌을 마쳤다. 외국인 선수들의 부진이 아쉬웠지만, 김승현, 김병철의 활약과 박재일의 성장은 위안거리였다.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서 또다시 오심 논란에 휩싸였다. LG와의 6강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오심이 발생했고, 오리온스는 KBL에 재경기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오리온스는 4강 진출에 실패했고, 정태호 단장은 사퇴했다. 이후 KBL은 외국인 심판제를 다시 도입하고 실린더룰을 폐지했다.

2004-05, 2005-06, 2006-07 시즌에도 김진 감독과 김승현-김병철 콤비는 꾸준히 활약하며 팀을 6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속공, 3점슛, 덩크슛으로 대표되는 화려한 농구는 대구 오리온스의 상징이 되었고,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2. 4. 위기와 몰락 (2007-2011)

2007-08 시즌을 앞두고, 오리온스는 6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던 김진 감독이 서울 SK 나이츠로 떠나면서 변화를 겪는다. 대한민국 농구계의 슈퍼 스타이자 1997-98 시즌 창원 LG 세이커스 감독으로 수비 농구를 통해 정규리그 2위를 이끌었던 이충희 감독을 영입했다.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전체 2순위로 귀화 농구선수 이동준을 영입하며 기대감을 높였고, 개막 2연승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김승현의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김승현은 21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하며 경기당 평균 6.0 어시스트를 기록했다.[30] 그 자리를 신인 김영수가 비교적 잘 메웠지만 역부족이었고, 주태수[31]와 이동준이 포스트에서 제 역할을 했지만 꾸준하지 못했다. 더욱이 이 둘은 포지션이 겹치는 문제가 발생하여 시즌 중 팀 리빌딩을 위해 주태수는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로 이적했다.[32] 시즌 초 이충희 감독이 사임하고 김상식 감독 대행 체제로 시즌을 치른 오리온스는 12승 42패로 7년 만에 최하위를 기록한다. 하지만 신인 선수 김영수, 이동준과 슈팅가드 김병철의 후계자로 지목되어 시즌 중 트레이드된 전정규[33]의 가능성을 확인한 시즌이었다. 김승현 공백 시 전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2008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대학 포인트가드 최대어 정재홍을 영입하는 등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2008-09 시즌, 김상식 감독 체제의 오리온스는 김승현의 빠른 복귀와 시즌 중반 원주 동부 프로미 우승 주역이었던 레지 오코사 트레이드 영입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노렸다. 그러나 김승현이 시즌 아웃되고, 설상가상으로 오코사와의 호흡도 맞지 않아 김상식 감독은 사퇴한다. 시즌 후,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과 코치를 역임한 김남기 감독과 김유택 코치가 취임했으나, 김승현은 이면계약으로 18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다. 2010-11 시즌에도 몰락은 계속되어 또다시 10위를 기록했다. 이 시즌을 끝으로 프랜차이즈 스타 김병철은 은퇴했고, 김남기 감독도 물러났다. 김유택 코치 역시 팀을 떠나 모교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2. 5. 고양으로의 연고지 이전 (2011)

2011년 6월, 추일승 감독 체제의 오리온스는 대구광역시와 협의 없이 경기도 고양시로 연고지 이전을 전격적으로 추진했다.[10] 이로 인해 2011-12 시즌부터 팀명은 대구 오리온스에서 고양 오리온스로 변경되었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연고지 이전은 오리온 제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질 만큼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10] 대구광역시는 한국프로농구연맹(KBL)에 오리온스의 연고지 이전 불허를 신청할 예정이었으나, KBL은 이사회를 통해 오리온스의 고양시 연고지 이전을 승인하였다. 고양시로 연고지를 옮긴 후 첫 시즌인 2011-12 시즌에는 20승 34패, 8위의 성적을 기록하였다.

2. 6. 고양 오리온스 시대 (2011-2022)

1994년, 한국프로농구연맹에 창단서를 제출한 동양제과 농구단은 1995년 3월 창단되어 1995년 10월 구단의 상징을 오리온스로 확정했다. 1996년 3월 27일 창단식을 통해 남자 농구계에 출사표를 던졌고, 이후 코리안리그 우승과 제77회 전국체육대회 준우승을 달성했다. 1997년 프로농구 출범을 앞두고 1996년 11월 농구 열기가 높은 대구광역시를 연고지로 정했으며, 12월 27일 10개 구단 중 가장 먼저 독립법인 동양레포츠 주식회사를 설립, '대구 동양 오리온스 프로농구단'으로 개칭하며 프로농구단으로 출범했다. 2003년 9월, 동양그룹과 오리온그룹의 분리로 '대구 오리온스 농구단'으로 개칭되었다.

2011년, 연고지를 대구광역시에서 고양시로 이전하며 '고양 오리온스 농구단'으로 변경되었으나, 이 과정에서 많은 잡음과 부정적인 시각이 있었다.[10] 2015년,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로 모기업 명칭을 포함한 팀명으로 변경했다. 홈구장은 2010-11 시즌까지 대구실내체육관이었고, 연고지 이전 후 2011-12 시즌부터 고양체육관을 사용하고 있다.

2002-03 시즌을 앞두고 샐러리캡 문제와 선수 이적으로 전력 약화가 예상되었으나, 김승현과 마르커스 힉스의 활약, 박훈근의 영입으로 선두권을 유지했다. 그러나 선수들의 부상과 징계로 위기를 겪었지만, 김병철의 활약과 신인 선수들의 활약으로 2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김병철은 시즌 MVP, 마르커스 힉스는 외국인 선수상, 김진 감독은 감독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KBL 챔피언 결정전에서 '15초 실종사건'이 발생하며 재경기 요청이 있었으나, 결국 재경기는 포기하고 6차전에서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2003-04 시즌에는 모기업 분리로 '대구 오리온스'로 팀명을 변경하고, 외국인 선수들의 부진으로 정규시즌 3위를 기록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또다시 오심 논란이 발생하며 4강 진출에 실패했다. 김진 감독은 강하게 반발했고, 오리온스는 KBL에 재경기와 진상조사를 요구했지만, KBL은 오심은 인정하면서도 재경기 요구는 기각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KBL은 외국인 심판제를 다시 도입하고 실린더룰을 폐지했다.

이후 2004-05, 2005-06, 2006-07 시즌에도 김진 감독과 김승현-김병철 체제를 유지하며 6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을 달성했다. 속공과 3점슛을 중심으로 한 화려한 농구는 대구 오리온스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고, KBL 통산 득점 1위, 3점슛 1위 기록을 세웠다.

2007-08 시즌에는 김진 감독이 서울 SK 나이츠로 떠나고 이충희 감독이 부임했다. 신인 이동준을 영입하며 기대를 모았으나, 김승현의 부상과 선수들의 부진으로 7년 만에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후 김상식 감독 대행 체제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2008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정재홍을 영입하며 다음 시즌을 준비했다.

추일승 감독 부임 후, 2011년 6월 오리온스는 대구광역시와 협의 없이 경기도 고양시로 연고지 이전을 강행하여 '고양 오리온스'로 변경되었다. 이로 인해 오리온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등 거센 반발이 있었고, 대구광역시는 KBL에 연고지 이전 불허를 신청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KBL은 이사회에서 오리온스의 연고지 이전을 승인했다. 2011-12 시즌에는 20승 34패, 8위를 기록했다.

2012-13 시즌 초반에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나, 선수 이탈 등의 문제로 5위를 기록했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안양 KGC인삼공사에 패배하며 4강 진출에 실패했다.

2015-2016 시즌에는 전주 KCC 이지스를 꺾고 역대 2번째 우승이자 고양에서의 첫 우승을 차지했다.

2. 7. 데이원 시대와 제명 (2022-2023)

2022년 초, 오리온이 구단 지분 매각을 추진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2022년 4월, 오리온은 대우조선해양 자회사인 데이원자산운용과의 매각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공식 발표했다.[1] 2022년 5월, 구단과 선수, 직원 모두 데이원자산운용으로 이전되면서 인수가 공식적으로 확정되었다.[2] 안양 KGC인삼공사에서 두 차례 우승을 차지한 김승기 감독이 감독으로 선임되었다.[3] 2022년 6월 24일, KBL은 데이원스포츠의 리그 가입을 공식 승인했으며, 전 선수이자 감독인 허재가 구단주 겸 단장으로 등록되었다.[4]

2022년 8월 25일, 데이원스포츠는 구단명을 고양 캐롯 점퍼스로 공식 발표했다.[5] 2023년 3월, 재정난으로 인해 캐롯손해보험과의 스폰서 계약이 해지되면서 고양 데이원 점퍼스로 구단명을 변경했다.[6]

2. 8. 소노 시대 (2023-현재)

2023년 3월, 재정난으로 인해 캐롯손해보험과의 스폰서 계약이 해지되면서 고양 데이원 점퍼스로 구단명이 변경되었다.[6]

3. 역대 팀명


  • 1996년–1997년: '''동양제과 농구단'''
  • 1997년–2003년: '''대구 동양 오리온스'''
  • 2003년–2011년: '''대구 오리온스'''
  • 2011년–2015년: '''고양 오리온스'''
  • 2015년–2022년: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 2022년–2023년: '''고양 캐롯 점퍼스'''
  • 2023년: '''고양 데이원 점퍼스'''
  • 2023년–현재: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7]

4. 우승 기록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는 KBL 챔피언 결정전에서 2회 우승(2001-02 KBL 시즌, 2015-16 KBL 시즌), 1회 준우승(2002-03 KBL 시즌)을 기록했다. 정규 시즌에서는 2회 우승(2001-02 KBL 시즌, 2002-03 KBL 시즌)과 1회 준우승(2016-17 KBL 시즌)을, KBL 프로-암과 KBL 컵에서는 각각 1회 우승(2015년, 2020년)을 기록했다.

4. 1. 국내 대회

KBL 챔피언 결정전에서 2회 우승(2001-02, 2015-16)과 1회 준우승(2002-03)을, KBL 컵대회에서는 2020년에 우승, 프로-아마농구 최강전에서는 2015년에 우승을 기록했다.

4. 1. 1. 리그

KBL영어 챔피언 결정전에서 2회 우승(2001-02, 2015-16)과 1회 준우승(2002-03)을 기록했다. 정규 시즌에서는 2회 우승(2001-02, 2002-03)과 1회 준우승(2016-17)을 하였다. KBL 프로-암에서는 2015년에 우승하였고, KBL 컵에서는 2020년에 우승하였다.

KBL 기록
대회우승준우승
KBL 챔피언 결정전2001-02, 2015-16 (2회)2002-03 (1회)
KBL 정규 시즌2001-02, 2002-03 (2회)2016-17 (1회)
KBL 프로-암2015 (1회)
KBL 컵2020 (1회)


4. 1. 2. 컵

5. 선수단

다음은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의 선수 명단이다.

번호포지션이름생년월일신장(cm)
1Gもりぐち ひさし|모리구치 히사시일본어1999년 9월 14일176
2G김세창1997년 10월 7일183
3G임종일1990년 1월 12일190
5G한호빈1991년 10월 14일180
6G이정현1999년 4월 14일187
7G조석호2002년 6월 15일178
8F최현민1990년 1월 19일195
9C이정제1990년 10월 13일203
11F조한진1997년 5월 24일192
12F문시윤1999년 12월 10일196
14F조재우1999년 12월 15일199
15C박진철1997년 7월 18일200
21G김강선1986년 10월 14일190
23G전성현1991년 11월 5일189
30F정해원1995년 10월 27일186
31G조승원1999년 2월 12일179
32C이종현1994년 2월 5일203
35F안정욱2000년 4월 22일193
55G김진유1994년 7월 16일188


  • 군 입대 선수: 김무성, 전성환
  • 감독: 김태술
  • 코치: 손규완, 손창환, 윤유량

5. 1. 역대 감독

순번이름재임 기간
1대박광호한국어1997년 2월 1일 ~ 2000년 1월 9일
2대최명룡2000년 1월 10일 ~ 2001년 1월 5일
3대김진2001년 4월 1일 ~ 2007년 4월 30일
4대이충희2007년 5월 14일 ~ 2007년 12월 26일
5대김상식2008년 6월 3일 ~ 2009년 3월 2일
6대김남기2009년 4월 22일 ~ 2011년 3월 27일
7대추일승2011년 3월 28일 ~ 2020년 2월 20일
8대강을준2020년 4월 28일 ~ 2022년 5월
9대김승기2022년 5월 ~ 2024년 11월
10대김태술2024년 11월 ~


6. 응원단

서한국이 응원단장을 맡고 있으며, MC이슈가 아나운서를 담당한다.[1] 치어리더는 박소영, 한유진, 김도희, 심송연, 원현정, 김수빈, 박지영으로 구성되어 2024-2025 시즌부터 활동할 예정이다.[1]

참조

[1] 웹사이트 오리온, 데이원자산운용과 매각 협상 중…연고지는 고양 유지 https://sports.news.[...] 2022-06-24
[2] 웹사이트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 데이원자산운용에 매각…허재 최고 책임자 내정 https://www.news1.kr[...] 2022-05-11
[3] 웹사이트 김승기 사단, 데이원자산운용으로…손규완·손창환 코치도 떠난다 https://sports.news.[...] 2022-06-24
[4] 웹사이트 KBL, 데이원 신규 회원 승인…허재 구단주 선임 https://sports.news.[...] 2022-06-24
[5] 웹사이트 캐롯, 창단식서 주황색 유니폼 공개…마스코트는 개구리 https://sports.news.[...] 2022-08-25
[6] 웹사이트 Goyang Jumpers lose Carrot as KBL calls in debts https://koreajoongan[...] 2023-03-22
[7] 웹사이트 Enter the Skygunners: Goyang rejoins KBL under new owner https://koreajoongan[...] 2023-07-21
[8] 웹사이트 상무 지원 마감, 최성원 포함 10개 구단 21명 지원...허훈은 한 시즌 더 미뤄 https://sports.news.[...] 2022-10-05
[9] 문서 데이원의 제명으로 인해 인수 대금 없이 잔존 선수, 코칭스태프만 데려가는 해체 후 재창단 절차를 밟았지만 한국농구연맹에서는 역사 단절을 인정하지 않고 구단 인수 후 기존의 기록과 역사를 승계한 팀으로 간주한다.
[10] 뉴스 추일승 감독 "연고지 이전 100승, 고양 시민들과 함께 기쁨 누리고파" - news1 http://sports.news.n[...]
[11] 웹사이트 http://history.kbl.o[...]
[12] 웹사이트 http://history.kbl.o[...]
[13] 웹인용 보관된 사본 http://history.kbl.o[...] 2008-06-01
[14] 웹인용 보관된 사본 http://history.kbl.o[...] 2008-06-01
[15] 웹사이트 http://history.kbl.o[...]
[16] 웹인용 보관된 사본 http://history.kbl.o[...] 2008-06-01
[17] 웹인용 보관된 사본 http://history.kbl.o[...] 2008-06-01
[18] 웹사이트 http://history.kbl.o[...]
[19] 웹사이트 http://history.kbl.o[...]
[20] 서적 KBL 10년사 KBL프로농구연맹 2007
[21] 웹사이트 http://history.kbl.o[...]
[22] 웹인용 보관된 사본 http://history.kbl.o[...] 2008-06-01
[23] 웹인용 보관된 사본 http://history.kbl.o[...] 2008-06-01
[24] 웹사이트 http://history.kbl.o[...]
[25] 웹사이트 http://orions.co.kr/[...]
[26] 웹인용 보관된 사본 http://history.kbl.o[...] 2008-06-01
[27] 웹인용 보관된 사본 http://history.kbl.o[...] 2008-06-01
[28] 웹사이트 http://history.kbl.o[...]
[29] 웹사이트 http://krdic.naver.c[...]
[30] 웹사이트 http://history.kbl.o[...]
[31] 웹사이트 http://history.kbl.o[...]
[32] 웹사이트 https://news.naver.c[...]
[33] 웹사이트 http://history.kb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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